청년사목
청년사목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머지는 하느님이 채워주실 꺼야."
청년 사목을 하는 사목자의 위치나 단체의 장이 되어 단체를 이끌다보면 문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짧은 시간에 에너지를 가득 쏟아부웠기에 결과를 하느님께 맡기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행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행사 때뿐이지 행사 후에는 쉽게 잊혀져간다. 실제 구성원이 늘어나지 못하고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행사 할 때의 열정만이 기억에 남고 그 효과에 대해서는 잊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행사 자체도 어려워지곤 하고 단체 구성원 모집도 잘 안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위의 생각은 이렇게 변하게 된다.
"어쩔 수 없잔아. 나도 잘 되길 바랬어"
사목자나 봉사자에게 이런 생각이 드는 때가 가장 위험할 때이다. 지금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거나 합리화하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번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이런 반응이 반복이 된다면? 사람은 외부적인 요인들(특히 사회 환경이 가장 빈번한 원인이 된다)로 책임을 넘기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첫번째 케이스
연초가 되면 전례단이나 성가대의 단원을 모집을 한다. 청년 미사 후에 젊은 청년들에게 손길을 내밀지만 청년들도 잘 보이지 않고 모집 종이를 받는 사람도 거의 없다. 새로운 구성원이 없으니 단체에 활력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다 문뜩 생각하게 된다. 어쩔 수 없지. 요즘 다들 취업이나 알바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봐.
두번째 케이스
여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시원한 물놀이와 저녁 아가페 그리고 기도까지 포함된 재미난 프로그램들이 완성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 신청이 저조하다. 결국 이미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계속 연락하면서 사람을 채우고 있는데 인원 때문에 신부님을 보기 민망하다(보좌 신부는 주임 신부님을, 단체장은 보좌 신부님을) 뭐 어쩔 수 없지. 직장인들은 휴가 내기 어렵고 새로운 친구들은 해외 여행이나 알바 때문에 성당 행사에 잘 오지 않은 것 같아.
크게 2가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모집도 잘 되고 행사 참여도 높다가 어쩌다 한번 안되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환경의 변화와 세상의 변화는 온전히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반복된다면 이 부분들 다시 생각해보자.
ㄱ.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 때
그전의 행사들을 돌아보고 그 결과들이 어떠했는지를 봐야 한다. 단순히 행사를 했다 안했다가 아니라 어떤 의미의 행사를 진행했고 참여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행사 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만약 행사 때에는 즐거워했지만(준비한 사람 앞에서 싫은 티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행사 후에 행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던지 성당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행사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음을 말한다.
물론 친목를 중심으로 할 때에는 친교 중심의 사람이 모여들고, 기도와 신앙을 중심으로 한다면 그에 맞는 사람이 모여든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하는데 한쪽으로만 집중되지 않았는지 봐야 한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면 큰 행사를 통해 바꾸지 말고 본당의 작은 일정 중에서 서서히 바꾸어 나가면 된다. 큰 행사에 참석하느냐 마느냐는 사람들에게 도박에 가까운 선택을 강요하는 꼴이기 때문이다.(캠프나 피정이 아닌 부활 모임, 성탄 모임 등에서 시작하면 된다)
ㄴ. 봉사자 혹은 단체원이 모집이 되지 않을 때
이런 경우는 조금 더 다양한 측면으로 생각해야 한다. 기존 봉사자들의 케어가 되고 있는지, 같은 방법으로만 모집하고 있었는지, 바쁜 일정 등의 이유로 직접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맡기고만 있는지 봐야 한다. 또 조심해야 할 자세는 기도를 하면서 기도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봐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으면 친한 이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하고자 한다. 또 누군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함께 하고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기존의 구성원들이 힘들어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주변에서는 당연히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성당은 한 지역의 인적 네트워크 안에 있기 때문에 정보와 이미지는 생각보다 빠르게 전달된다.
청년은 청년 미사에 참석할 것이다! 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실제로 토요일 저녁 미사나 아침 미사와 교중 미사, 주일 밤미사(큰 본당은 청년 미사 후에 또 미사가 있는 경우가 있다)에 가족과 함께 오는 청년들도 생각보다 많다. 청년 미사가 활기차다고 생각하면서 오는 사람들은 새로 전입오거나 세례를 받은 청년을 빼고는 대부분 어른들이다. 또 지역별로 생활 형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모집 방법에 대해서 계속 성찰해 봐야 한다.(지역별 특징이란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빠른 변화가 있는 지역과 아닌 지역, 가족적 분위기를 강조하는 지역과 조금 느슨한 지역 등등이 여러 차원이 있다)
구성원의 모집에 있어서 사목자나 단체장을 제외한 단체원들은 그 위급함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사목자나 단체장은 장이라는 위치가 주는 책임감 때문에 더 잘되길 바라는 반면 단체원에겐 그 책임감이 약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집에 대한 고민을 사목자나 단체장이 아닌 단체원에게 자주 맡긴다면(예를 들어 사목자와 단체장은 고민하는 데에 힘을 쓰고 실제 움직임은 여러 이유로 하지 못할 때) 모집에 대한 방향성과 열정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하느님께 사람을 보내주길 청하는 자세는 좋다. 그러나 기도만 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면 변화는 오기 힘들다. 물론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많지 않다. 또 찾아오는 청년을 받으면 구성원에 대한 케어를 거의 하지 않게 된다. 받아본 적이 없으니 못할 뿐더러 또 사람들이 모여서 성장하는 구조가 아닌 또 누군가 오겠지 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요약하면 이렇다.
어쩔 수 없었어 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사회의 변화와 흐름에 눈을 감은 채 과거의 방법만을 고수하고만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한두번은 그럴 수 있지만 계속 반복되는 현상이라면 반성적 성찰을 하지 않음을 보여줄 뿐이다.
내가 본당에서 청년들을 모집하면서 느꼈떤 점을 정리해 봤다.
그리고 의미를 주는 작업을 하기 전에 사람들을 모집하기 위해 체크했던 부분이면서 최근 들어 종종 들려오는 체념들에 정리해봤다. 청년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에도(교사 뿐만 아니라 학생들까지) 거의 그대로 적용이 되지만 청년 사목에 더 현실적으로 와닿을 듯해서 청년 단상에 글을 둔다.
출처 : 서울대교구 이승화 시몬 신부님의 사목연구소 /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iamlsh/22118441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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