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목
청년사목
본당은 하나의 공동체이다. 바로 신앙 공동체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신앙이라는 공통점으로 함께 모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공동체이다. 같은 취미도 아니고 직업도 아닌데 사람들이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놀랍다.
더군다나 청년의 경우 나이도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기에 세대차이도 어마어마하다. 농담삼아 말하면 초등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차이는 12살인데, 막 청년 단체에 가입한 새내기 대학생이 30대 초반 형 오빠 누나 언니와 함께 한다고 보면 놀라울 것이다.
특별히 청년의 경우 본당에서 단체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 연합회, 전례단, 성가대와 레지오, 봉사단체, 성경 공부모임 등으로 나눠지다 보니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각 단체를 다르지만 하나의 공동체라는 점을 중요시 할 것인가? 아니면 각 단체별로 활성화하는 것으로만 충분할까?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에는 삼위일체가 있다. 세 분이시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다.
하느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내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성찰한다면 하나이신 하느님을 강조하게 된다.
반면 우리가 체험하는 하느님에 대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삼위이신 하느님을 바라보게 된다. 구약에서의 성부 하느님, 복음서에서의 성자 예수님, 승천하신 후에 협조자로 오신 성령으로 체험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뭘까? 어디를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양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청년 사목으로 돌아오면 이렇게 할 수 있다.
하나를 강조할 때에는, 각 단체로 나눠져 있지만 그것은 기능상의 차원일 뿐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해진다.
따라서 캠프나 피정, 전체 청년 모임을 중심으로 사목이 시작된다.
각 단체를 강조할 때에는, 각 단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사목이 된다. 전례단은 미사와 기도를 중심으로 배워나가는 장소가 되고 성가대는 노래 안에 신앙을 담을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성경 공부는 하느님을 알아가는 장소가 된다. 그러다보니 전체 캠프나 피정, 전체 모임보다는 각 단체별 행사(전례단 야유회나 피정, 성가대 음악 피정, 성경 공부 연수나 말씀의 전례 등)가 중요시해진다. 각 단체의 색깔을 키우는 형식이 된다.
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
하나를 강조할 때에는 본당 공동체가 강조되어 다양한 체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서로 친교를 이룰 수 있기에 끈끈함이 생긴다.
반면 모든 단체가 가진 특수성이 흐려지는 약점이 있어 어떤 성당을 가거나 어떤 단체에 가도 다 비슷비슷해진다.
각 단체를 강조할 때에는 청년들 자신들이 체험하는 하느님 혹은 체험하고 싶은 하느님에 대해 심화 과정을 얻을 수 있다.
개인과 하느님과의 관계가 더욱 두터워진다. 반면 공동체의 개념이 약화되어 같은 본당을 다니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본인의 경우에는 각 단체를 강조하는 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에 의하면, 청년들이 적을 수록 하나를 강조하면 도움이 되고(다 합쳐서 20-30명 정도일 경우)
청년들이 많아질 수록 각 단체를 강조하면 도움이 되었다.(40명이 넘어갈 경우)
이유는, 각 단체의 색이 강해질 수록 그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냉담자들이나 새로 신앙인이 된 청년들이 매력적으로 느끼고 다가왔기 때문이다.
반면 일년에 2번 혹은 분기별로 전체가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하나의 공동체라는 점도 놓치지 않으려고 장치를 만들어서 친교를 유지했다.
사실 청년 성서모임으로 각 단체별로 이해할 수 있는 만남들(그룹원 구성을 통해서)을 만들고 1년에 2번씩 전체 자리를 만들어서(전체총회 혹은 사제의 축일, 생일 등 타이틀은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 친교의 장을 열었더니 가치와 친교 모두를 잡을 수 있었다.
출처 : 서울대교구 이승화 시몬 신부님의 사목연구소 /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iamlsh/221098402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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