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목
묵상자료
연중 제18주일(2020)
(이사 55,1-3 / 로마 8,35.37-39 / 마태 14,13-21)
+ 찬미 예수님
언젠가 청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낸 후 늦은 밤 귀가할 때 일입니다.
반월당에 있는 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제 뒤에서 큰 수레를 끌고 오시는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그 수레에는 박스와 잡다한 물건들이 제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 무거운 수레를 힘겹게 끌고 오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니
순간 마음이 ‘찌릿찌릿 짜안’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할아버지에게 가서 “밀어드릴까요?”하고 물었습니다.
멈칫하시는 할아버지를 보고서는 거절 하실까봐 곧바로 “그냥 저기까지만 밀어드릴게요.” 하며 수레 뒤로 가서 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더 묵직했습니다.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고 나서 더 밀어 드리려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부담스러워하셔서 그냥 인사하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짜한(?) 아니면 찡한(?)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가슴이 찢어지고 메어질 듯한 감정을 못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많은 군중을 바라보시는 예수님 또한 이 감정을 피해가지는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 우리가 느끼는 그 어떤 감정보다 더 큰 아픔과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병이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어떻게 이 적은 음식으로 이러한 엄청난 기적이 이루어지게 되었을까요?
이 기적은 예수님의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연민”이지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많은 군중이
외딴곳까지 육로로 걸어서 따라왔던 것입니다.
배에서 내리실 때 이러한 광경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복음서에는 여러 장면에서 “가엾은 마음이” 드신 예수님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는 군중을 보실 때, 그리고 오늘 장면,
매정한 종의 비유에서, 예리코에서 눈먼 이들을 고치실 때 나타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오늘 복음과 같고요...
루카 복음에서는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는 기적을 베푸실 때, 착한 사마리아인,
그리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나타납니다.
이 “가엾은 마음”은 희랍말로 “σπλαγχνίζομαι(스플랑크니조마이)”라고 하는데요,
이 단어를 좀 더 우리나라 말로 자세히 번역하자면,
“단장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이 끊어지는 고통... 부모가 자식을 잃을 때 겪는 고통이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늘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느끼신 마음이 바로 이러한 마음입니다.
군중의 그 많은 고통을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느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이었기에
제자들이 군중을 집으로 돌려보내자고 하지만,
그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먹을 것을 나누려고 하신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인하여 큰 기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일 겁니다.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라...
이 말을 많이 듣기도 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쉽지는 않지요.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 되겠고요...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엾은 마음”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일들이 어렵다면,
먼저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려고 하는 노력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상대방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또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하는 사랑의 실천은 자연스레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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