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목
묵상자료
연중 제16주일(2020)
(지혜 12,13.16-19 / 로마 8,26-27 / 마태 13,24-43)
+ 찬미 예수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면 가끔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영성체를 했으니까’, ‘예수님 말씀을 실천해야 하니까’ ‘내가 좀 참자’ ‘내가 모른 척해 주자’ 하면서 말이지요.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래도 ‘다른 종교보다는 천주교가 더 낫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형제·자매님들께서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내가 좀 답답하더라도 잘 참고 인내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하고 영성체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나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혹시 지금 미사를 참례하면서도 마음속에 분노와 미움이 자리 잡고 있는 분들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미사를 준비하고 강론을 준비하면서 ‘서로 사랑합시다’. 라고 말은 자주 하지만, 실상 저 역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용서가 잘 됩니까? 잘 안되지요. 왜 잘 안됩니까? 용서했다고는 하는데 아직 마음에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한다고 했는데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또 속이 부글부글 끓기 때문에 마음이 영 찝찝합니다. ‘같은 내용으로 또 고해성사 봐야 하나’ 걱정이 되고, 내가 위선자가 된 것 같지요.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는 나 스스로 치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처는 누가 치유해 줄까요? 바로 하느님께서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워 죽겠는 사람, 상처 준 사람과의 일로 고해성사 보고 난 뒤에는,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가 하루빨리 치유되도록 주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내 마음의 상처도 빨리 아물고 용서도 더 쉬워집니다. 이렇게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난 다음에 우리는 주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나아가 마지막 날에 보이실 하느님의 정의로운 심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밀인지 가라지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면서 가라지라고 함부로 평가하고 그것을 뽑아내려고 하다 보면,
밀까지 다친다는 오늘 복음은 훗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에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별될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구분은 하느님 아버지가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심판이 있기 전에 그 아버지의 뜻을 믿고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살면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훗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에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별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여러 가지 일들로 서로 주고받은 억울함과 상처, 아픔은 하느님 아버지의 정의로운 심판에 맡기고, 오늘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데 지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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