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목
묵상자료
연중 제6주일
(집회 15,15-20 / 1코린 2,6-10 / 마태 5,17-37)
본래의 뜻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그 의도와 목적을 분명히 따집니다.
레지오 활동. 더욱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합니다. 주일학교와 신앙학교. 아이들의 신앙성숙과 친교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방향설정이 제대로 잡혀 있으면 뒤에 오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만큼 어떤 일을 추진할 때에 그 의도와 목적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죠.
제가 신학생 때의 일이었습니다. 일 년의 한번 씩 한티, 하양, 남산동 신학생들이 다 같이 모여서 축제를 즐기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그 축제의 가장 핵심 프로그램을 맡아서 준비하는 위원장이었습니다. 열심히 프로그램을 짰죠. 처음에는 한티, 하양, 남산동 형제들의 일치와 친교를 위한다는 그 방향설정이 매우 분명했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준비하는 시간이 점점 흐르자 일의 분량, 중요 프로그램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인해 갑자기 삐걱되기 했습니다. 서로가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처음에 방향 잡은 형제들의 일치와 친교라는 대전제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 우리의 모든 일들이 그저 ‘형식’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서로 성질 안 건드리려고 눈치 보며 빨리 해치우자는 식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서로 으샤으샤 하면서 별탈없이 축제를 잘 마쳤지만,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 좋은 의도와 목적, 방향설정이 변질되면 전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이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그 본래의 뜻을 너희들이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가르치러 왔다.’ 하느님께서 잡아놓으신 그 의도와 목적, 방향설정을 너희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지켜라. 그런 뜻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안식일 이야기죠.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도 됩니까?’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에도 병을 고쳐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안식일의 규정이 사람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본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좋은 일을 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방향설정을 변질시킨 사람들이죠.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주일을 어떻게 지내십니까?
주일은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날이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 날이고, 거룩하게 지내는 날입니다. 주일은 그렇게 사는 날입니다. 그런데, 주일 미사 의무 규정에 묶여서 미사 참례만 하고 내가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또한 하느님의 뜻을 우리 마음대로 변질시킨 것이 됩니다.
고해성사도 마찬가지죠. 하느님과 화해를 하고 내가 다시 하느님 사랑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이 고해성사입니다.
그런데, 판공성사 규정에 묶여서 일 년에 두 번 정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로 끝난다면, 그것 또한 하느님의 뜻을 변질시킨 것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그 선하신 뜻을 우리는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하느님의 방향대로 다시 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잡아놓으신 그 본래의 뜻을 잊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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