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목
묵상자료
사순 제1주일
(창세 2,7-9; 3,1-7 / 로마 5,12-19 / 마태 4,1-11)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해보시오.”
오늘 복음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향해 던지는 조롱과 유혹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악마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마태오 복음 4장 1절에서 11절 말고 다른 곳에서도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마귀들과 돼지 떼(마르5, 1-20)에 대한 부분에서 더러운 영은 예수님을 향해 큰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 볼 때 악마(유혹자, 더러운 영으로도 표현되는)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지닌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악마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도록 예수님을 흔듭니다.
어떤 능력, 권한, 행위의 달성과 같은 것들을 조건으로 내세우며 마치 그것들을 충족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듯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악마가 제시하는 조건에서 찾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지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은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 사랑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악마가 제시하는 조건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집중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매달려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십니다.
경쟁의 문화가 짙어지면서 능력과 조건, 결과가 중요시되는 요즘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것들에 더 집중하며 그에 따라 우리의 관계 맺음도 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 맺음도 나의 능력, 조건, 결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변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조건이 달성되지 않을 때, 주로 나의 청원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낙담하고, 기도하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습니다. “하느님께서 더 이상 나를 돌보지 않으시나 봐...”
하지만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듯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 맺음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했거나 무엇인가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젊은이 여러분~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하지 못했는가? 나의 상황이 어떠한가? 살피는 것도 좋지만 이번 사순시기에는 각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성경말씀을 자주 묵상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도 더 뚜렷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자연스레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고자 조금씩 변화할 겁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순시기를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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