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

(이사 52,7-10 / 히브 1,1-6 / 요한 1,1-18)

마구간에 태어나신 이유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여러분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한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신학생일 때, 주임 신부님께서는 대림시기가 되면 본당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던 본당 신학생들에게 성탄 구유와 트리를 만드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당의 솜씨 좋은 분들이 준비해도 되었을 텐데도 본당 신부님께서 신학생들에게 맡기신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서툴지만 구유를 만들고 트리를 장식하면서 자칫 사회의 성탄 분위기에 취해 들뜰 수 있는 마음을 경계하고, 경건하게 그리고 거룩하게 기도하면서 성탄을 준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생들이 만든 엉성한 마구간 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모시고 성탄 대축일 미사를 드릴 때면 얼마나 흐뭇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성탄절이 되면 구유와 화려한 트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빠질 수 없는 포토존이 됩니다. 하지만 사실 마구간은 가축들이 먹고, 자고, 싸는 곳. 냄새나는 곳. 지저분한 곳. 깨끗하게 청소를 해도 금방 더렵혀지는 곳이지요.

 그런데 왜 예수님은 하늘에서의 영광을 뒤로하며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니 문득 지금 우리의 처지가 마구간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평소 고해성사와 희생, 봉사를 통해 나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해도 우리는 쉽게 유혹에 빠지고 죄를 범하는 생활로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어둠이고 마구간과 닮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마구간을 닮은 우리 가운데 태어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내 안에 있는 실망과 좌절과 부끄러움을 보듬어 안아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이유이고, 우리에게는 기쁜 소식이자 축복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탄 강론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여,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잠자는 이여,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죽음에서 일어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나는 다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습니다. 그 빛이 마구간 같은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쁜 오늘입니다. 오늘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님을 보며 예쁜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분의 그 사랑을 가슴에 담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도록 마음모아 기도드립시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 가십시오.” (에페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