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목
묵상자료
연중 제17주일(다)
(창세 18,20-32 / 콜로 2,12-14 / 루카 11,1-13)
나무와 숲
+찬미 예수님!
오늘 1독서에서는, 아브라함과 주님의 대화 장면이 등장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시려는 주님과, 의인의 구원을 간청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의인 쉰 명, 마흔 다섯 명, 마흔 명, 서른 명, 스무 명, 결국 열 명까지 계속 청하는 아브라함과, 그 청을 마지막까지 물리치지 않으시는 주님의 모습이 더욱 특별하게 보입니다. 복음에서도 선포되듯이, 이처럼 주님께서는 간청하는 이의 청원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껴지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것 같지 않다.’ 라는 것이죠.
이런 생각을 해 볼수 있습니다.
부모의 입장이신 분들, 자녀를 키울 때, 자녀가 필요하다고 해달라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든 것을 바로 다 들어주셨습니까? 어떤 것은 바로 들어주기도 하였지만, 어떤 것은 ‘아직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에 적당한 시기를 보고,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며 들어주셨을 것입니다.
자녀의 입장일 때에는 그런 부분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부모의 입장이 되어 보면 또 그런 부분들이 이해가 되셨을 것도 같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자녀의 사고, 시야와 부모님의 생각,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곧 부모님은 자녀보다 좀 더 넓은 시야로,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큰 그림을 그린다고도 하죠. 눈앞의 나무가 아닌 전체적인 숲을 보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주지는 않으셨을 것이고,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청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셨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언제일지, 어떤 방법일지는 부모님의 몫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가 청을 하지만,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느님의 시간 안에서 그 청을 들어주시는 것이죠. 우리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전체적인 것을 보시고 이루어주시는 것이죠.
기도하는 그 순간, 필요한 순간에는 ‘이게 뭐야! 안 들어주시잖아!’라며 불평을 하고 실망을 하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그때의 일을 다시 되짚어보면, ‘아, 나의 기도를 그런 방법으로 들어주셨구나’하는 경험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청해야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아버지의 뜻 안에서 청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분명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청하는 이에게 주실 것이고, 찾는 이에게 보여 주실 것이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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