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목
묵상자료
연중 제7주일(다해)
(1사무 26,2.7-9.12-13.22-23 / 1코린 15,45-49 / 루카 6,27-38)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시며 참 어려운 방법들을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이를 축복하고, 학대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뺨을 때리면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에 속옷까지 내어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것만큼은 노력해보자 마음에 새기게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용서하여라.” 이 말씀이 마음에 남는 이유가 아마도 우리도 용서받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하는 신앙인들이기에 용서에 대해 노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용서란 과연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용서를 뜻하는 영어단어는 “Forgiveness”입니다. 이 “Forgiveness”라는 단어는 그 어원을 살펴보면 “완전히 주는 것.”이라고 풀이될 수 있습니다.
이 어원을 통해서 용서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지고 갔고, 그것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서 시간을 가지고 갔고, 재물을 가지고 갔고, 사랑을 가지고 갔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똑같이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시간을 내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그 사람은 나의 그런 노력은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을 때 우리는 화가 나고 용서하지 못하게 됩니다.
나에게 있는 재물을 상대방이 가지고 갔는데 돌려주지 않을 때 우리는 화가 나고 용서하지 못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을 줬는데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우리는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용서는 ‘완전히 주는 것’입니다. 내가 받으려 않고 나의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완전히 줘버리는 것, 바로 그것이 용서입니다.
물론 나의 희생이 따르겠지만 원래 상대방의 것이라 여기며 내 것을 완전히 주는 것,
절대 내어줄 수 없을 것 같아도 그냥 마음 편하게 내어준다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용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용서가 필요한 이유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용서하지 못해 멀어진 관계, 서로의 잘못으로 끊어진 관계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 용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쩌면 서로가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용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공동체를 생각하면 불안한 모습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는 원수도 있고 박해하는 이도 있고 미워하는 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안함 때문에 일치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치를 이루기 위해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완전하게 내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서로 용서를 실천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일치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용서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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