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목
묵상자료
연중 제20주일
(1독서: 이사 56,1.6-7 / 2독서: 로마 11,13-15.29-32 / 복음: 마태 15,21-28)
혐오와 차별을 넘어
요즘 우리 사회 전반에 혐오와 차별로 인한 문제들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정치인들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젠더 갈등, 무차별 흉기 난동,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사건 사고들은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안타깝게도 우리 교회 안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고 있어...” “우리 청년회가 최고야~” 라고 생각하며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돼..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돼...”라고 여러 사람들을 판단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지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더 나아가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넘쳐나는 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가나안 부인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비를 청하는 가나안 부인에게 하신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씀하시며 여인의 청을 거절하시는 야박한 모습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진 복음입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에는 유다인들을 위한 표현과 전개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복음도 바로 그런 맥락 안에 있는 것이지요.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팔레스티나로 옮겨와 정착하기 전, 그 땅의 원주민입니다. 기원전 1200년경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힘으로 그 땅을 점령하였고,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티나 원주민인 가나안 사람들을 멸시하며, 그들을 강아지라 불렀습니다. 오늘날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팔레스티나 원주민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분쟁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가나안 부인의 믿음 뿐 만이 아니라,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그 시대 이스라엘의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그 가나안 부인의 청을 들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그 부인의 과감한 행동을 칭찬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가나안 부인의 믿음을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은, 이 부인은 이스라엘 민족의 배타성을 뛰어넘어,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자비를 읽고, 그 자비가 구원이라는 사실을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하느님은 이방인들도 당신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신다’(이사 56,6-7)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기 자신을 ‘이민족들의 사도’로서 그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합니다.(로마 11,13).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자기 기준에 따라 쉽게 사람들을 편 가르고, 구분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하느님은 모두에게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유대인과 이교도를 차별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면서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역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내 성에 좀 차지 않는 사람도, 눈엣가시 같은 사람도 생명의 빵을 먹는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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