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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교육.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
2. 교의 헌장 『인류의 빛』 (Lumen Gentium)
2. 교회, 보이는 실재이면서 영적인 실재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만나서 참 반갑습니다.
오늘은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이 문헌의 제1장에서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며, 교회를 '복합체'(8항)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가 ‘복잡하다’는 뜻으로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또 어떤 분은 교회가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제도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사회적·종교적 집단과도 다른 특징을 지녀 복합적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라틴어에서 '복합적(complexa)'이라는 말은 하나의 실체 안에 서로 다른 모습이나 차원들이 질서 있게 결합되어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빛」은 교회가 인간적인 차원과 신성한 차원이 분리되거나 혼란스럽게 섞이지 않은 채,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잘 짜인 유기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차원인 '인간적 차원'은 우리 눈에 금방 들어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기쁨과 고단함을 함께 나누는 남녀들의 공동체입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며, 우리 삶의 여정에 동행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징이 됩니다. 하지만 제도적인 조직으로 나타나는 이런 모습만으로는 교회의 참된 본질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는 '신적인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적인 차원은 구성원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거나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회는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 즉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그 사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지상 공동체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눈에 보이는 모임인 동시에 영적인 신비입니다. 또한 역사 속에 실재하면서도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하는 백성이기도 합니다(LG 8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771항 참조).
교회의 인간적인 차원과 신적인 차원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지 않고 조화롭게 통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러한 역설(Paradox) 속에서 살아갑니다. 즉, 인간적이면서도 신적인 실재로서, 죄인인 인간을 맞아들여 하느님께로 인도합니다.
교회의 이런 신비로운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빛」은 그리스도의 삶을 바라보라고 초대합니다. 팔레스티나의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그분의 눈빛, 손길, 목소리—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분을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은 바로 그 환대하는 시선과 축복하시는 손길, 그리고 자유와 치유를 주시는 말씀에 이끌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분을 따라나선 제자들은 그 인간적인 모습 너머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육체와 얼굴, 몸짓과 말씀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현실에 비추어 교회를 다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교회를 바라보면, 우리는 구체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인간적인 모습을 봅니다. 때로는 복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지만, 때로는 우리 모두처럼 힘겨워하고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구성원들과 그들의 제한된 지상적 모습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과 구원의 활동이 드러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복음과 제도는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구조는 “우리 시대에 복음을 실현하고 구체화하기 위해” 존재합니다(2006년 11월 9일, 스위스 주교단에 하신 연설). 땅과 분리된 이상적이고 순수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역사 안에 구현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만이 있을 뿐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머무르시며, 그 구성원들의 작음과 연약함을 통해 계속해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 기적을 바라보며, 우리는 하느님의 ‘방식’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의 나약함을 통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계속해서 활동하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타인이라는 거룩한 땅 앞에 신을 벗는 법을 배우라"(169항)고 권고하십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합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친교와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영적인 집을 지어가도록 합니다.
사랑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끊임없이 불러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이가 오직 사랑에만 마음을 두기를 바랍니다. 오직 사랑만이 모든 것을 이기며,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가치가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모든 것이 이끌려 옵니다"(설교 35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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