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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프란치스코 교황님 -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성 요셉,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95회 작성일 22-02-16 09:56

본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주(2월 2일)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우리는 요셉 성인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영감을 받아 ‘모든 성인의 친교’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주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오늘은 요셉 성인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각별한 신심인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신심은 요셉 성인이 나자렛 집에서 동정 마리아와 예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임종을 맞이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없으나, 요셉 성인의 모습이 더 이상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나자렛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리아와 예수님께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셨습니다.

100여 년 전 베네딕토 15세 교황님은 “요셉 성인을 통해 우리는 마리아에게 직접 가고, 마리아를 통해 모든 거룩함의 근원이신 예수님께로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 성인과 마리아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베네딕토 15세 교황님은 요셉 성인을 공경하는 신심행위를 장려하시면서, 특별히 한 가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습니다. “요셉 성인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보살핌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고 임종하는 이들의 가장 실질적인 수호자로 마땅히 여겨졌으므로, 임종하는 이들을 위해 요셉 성인에게 간구하고자 설립된 ‘좋은 죽음’, ‘성 요셉의 임종’, ‘임종하는 이들을 위한’ (…) 등과 같은 신심 깊은 단체들을 가르치고 도와주는 것은 거룩한 목자들의 돌봄이 될 것입니다”(베네딕토 15세 교황, 자의 교서 「건강한 선」(Bonum sane), 1920년 7월 25일). 여기서 언급된 단체들은 당시의 신심단체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혹자는 이러한 표현과 주제가 그저 과거의 유산일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죽음은 과거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항상 현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죽음의 어두운 문 앞에 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명료한 정신으로 이렇게 “저는 죽음의 어둠, 죽음의 어두운 문 앞에 서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전임교황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조언입니다! 이른바 “웰빙(Well-being)” 문화가 죽음의 현실을 지우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극적인 방식으로 이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끔찍했습니다.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었고, 너무나 많은 형제자매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롭게 떠나 보냈습니다. 그로 인해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한 간호사가 저에게 말하기를, 코로나19로 인해 임종을 앞둔 할머니 한 분이 “죽기 전에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간호사는 용감하게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그 할머니와 할머니의 가족이 통화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애틋한 이별인지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유한성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죽음의 힘을 빼앗고 두려움을 몰아내려고 자기 자신을 속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죽음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제대로 맞이하도록 도와줍니다. 머지않아 우리 모두는 그 죽음의 문을 마주할 것입니다. 

죽음의 신비를 밝히는 참 빛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나옵니다. 여기에 빛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2-14).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셨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의 어두운 문 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빛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죽음의 심연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에 더해 죽음에 긍정적인 역할을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 밝혀진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우리로 하여금 삶의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저는 장례 영구차 뒤를 따라가는 이삿짐 트럭을 본 적이 없습니다! 관을 실은 영구차 뒤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수의의 주머니에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고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빈손으로 떠납니다. 왜냐하면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죽음의 외로움은 사실입니다. 저는 영구차 뒤에 이삿짐 트럭이 따라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죽는다는 게 사실이라면, 재물을 쌓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쌓아가야 할 것은 사랑, 나눌 수 있는 역량,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보고도 외면하지 않는 역량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게 사실이라면, 형제나 자매, 친구, 식구 중 한 사람과 다투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같은 신앙을 가진 형제자매와 다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화를 내고,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죽음 앞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원한을 남기지 않고, 후회 없는 가운데 화해를 이룬 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 진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죽음의 문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말입니다. 

복음은 죽음이 도둑처럼 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곧, 죽음은 도둑처럼 오고, 우리가 제 아무리 죽음이 오는 것을 통제하려 애를 써도, 심지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죽음 자체를 계획하려고 하더라도, 죽음은 여전히 우리가 마주해야 할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려해야 할 사항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인간적으로 가능한 모든 의학적 치료와 조치를 취한 뒤에 더 이상 가능성이 없고 죽음을 막을 수 없는데도 억지로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연명치료(accanimento terapeutico)’를 지속하는 것은 비윤리적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78항 참조). 하느님의 신실한 백성, 소박한 신자들은 “평화로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합시다”, “평화로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도와줍시다”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말인지요!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죽음 자체의 질, 고통의 질, 아픔의 질에 관한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는 의학이 주는 모든 도움에 감사해야 합니다. 의학은 소위 “완화치료(cura palliativa)”를 통해 가능한 한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도움을 살인으로 향하는 용납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의학적 조력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앞둔 사람과 함께해야 하지만, 죽음을 유발하거나 어떤 형태의 자살도 도와서는 안 됩니다. 돌볼 권리, 모든 사람을 돌볼 권리를 항상 우선시하여 가장 약한 사람들, 특히 노인과 병자들이 결코 버림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삶은 권리입니다. 하지만 죽을 권리란 건 없습니다. 죽음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 윤리적 원칙은 그리스도인을 비롯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실질적인 사회 문제 하나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로 ‘인구조절(pianificare)’입니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인들의 죽음을 앞당기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종종 특정 사회 계층의 노인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적은 양의 약을 투여 받는 것을 보곤 합니다. 이는 비인간적입니다. 이는 그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들을 더 일찍 죽음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이지도, 그리스도인답지도 않습니다. 노인들은 인류의 보화처럼 돌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지혜입니다. 말을 하지 않거나 의미 없는 말을 하더라도, 그들은 인간 지혜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인생의 길을 걸었고, 우리에게 많은 아름다운 일과 많은 추억과 많은 지혜를 남겨주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노인들을 고립시키지 말고, 노인들의 죽음을 앞당기지 마십시오. 노인들에게 애정을 표하는 일은 어린아이들에게 애정을 표하는 일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생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신비 그 자체, 존중받고 함께 있고 보살핌 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으로 죽음의 신비를 살 수 있게 요셉 성인이 도우시길 빕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웰다잉(Well-dying)’은 우리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성모송’을 바칠 때 우리는 성모님께서 “저희 죽을 때에” 우리 가까이 계시길 기도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저는 임종하는 이들과 그 순간 죽음의 어두운 문을 지나가는 이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위해 함께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오늘 교리 교육을 마치고자 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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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2-02/papa-francesco-cateche… 470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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