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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프란치스코 교황님 -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성 요셉, 온유하고 다정한 아버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95회 작성일 22-01-26 09:34

본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온유한 아버지의 모습을 지닌 요셉 성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2020년 12월 8일 반포한 교황 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Patris corde)에서 저는 요셉 성인의 성품의 한 측면인 온유함에 대해 묵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복음서에는 요셉 성인이 어떻게 아버지다움(paternità)을 행사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가 예수님을 가르치는 데 있어 “의로운” 사람으로서 관여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요셉이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가는”(루카 2,52) 예수님의 모습을 날마다 지켜보았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하신 것처럼 요셉은 예수님께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팔로 안아 주었습니다. 그는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는 아버지였습니다(호세 11,3-4 참조).”(「아버지의 마음으로」, 2)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이 성경 말씀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관계가 요셉 성인과 예수님 사이의 관계였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말씀하실 때 항상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음을 보여줍니다.[1]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는 루카 복음사가가 말한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입니다(루카 15,11-32 참조). 이 비유는 죄와 용서의 체험과 더불어 용서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도달하는 방식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20절). 아들은 벌을 받거나 최소한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길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아버지 품에 안긴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온유함은 세상의 논리보다 훨씬 더 큽니다. 온유함은 정의를 실현하는 뜻밖의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에 충격을 받거나 놀라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좋은 것을 명심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놀라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고, 사랑이시며, 온유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 우리의 실수, 우리의 넘어짐에 충격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닫히는 것을 우려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 부족에 충격을 받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데 있어서 큰 온유함이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께 가장 먼저 전한 사람이 요셉 성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좋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일은 항상 인간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도달합니다. 제가 이미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연극 공연을 하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 ‘아반티’라는 팝그룹의 젊은이들이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에서 감명을 받아 이 주제를 가지고 팝 오페라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훌륭하게 해냈죠. 팝 오페라의 내용을 말하자면, 아버지와 소원해진 아들, 그러니까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내쫓고 벌을 줄까 두려워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그 아들의 하소연을 다른 친구가 들어준다는 내용입니다. 하소연을 들은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에게 전령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 아버지가 너를 받아주신다면 집의 가장 높은 창문에 손수건을 매달아 바깥에서 보일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해봐. 네가 집에 도착했을 때 볼 수 있도록 말이야.”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팝 오페라는 그 아들이 길을 걸어 집에 도착해 자신의 집을 바라보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노래와 춤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그가 집에 도착해 고개를 들어 창문을 올려다보자 하얀 손수건이 가득 걸려 있었습니다. 꽉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창문 하나에 한 개의 손수건이 아니라, 창문마다 서너 개씩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나 우리가 저지른 나쁜 일들에 전혀 개의치 않으십니다. 그저 우리가 마음을 닫는 것을 우려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결산해야 할 셈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셈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말하기 시작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안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도 이러한 온유함을 체험한 적이 있는지, 그 증인이 되었는지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온유함은 무엇보다 감정적이거나 감상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온유함은 우리가 가난하고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끼는 체험, 하느님의 사랑으로 변화되었음을 느끼는 체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재능뿐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의 나약함도 활용하십니다. 예를 들어,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나약함을 두고 하느님의 계획이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는 코린토 공동체에 보낸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2코린 12,7-9).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나약함을 없애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의 나약함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나약함을 어루만지시며,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에 대한 체험은 정확히 우리를 가장 나약하게 만드는 것들을 어루만지시는 하느님의 권능의 손길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온유함을 체험하려면 “우리의 나약함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악마의 시선에서 “온유함으로 우리의 나약함을 드러나게 해 주시는” 성령의 시선으로 변해야 합니다. “온유함은 우리 안의 나약함을 어루만져 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아버지의 마음으로」, 2). 간호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십시오. 간호사들은 온유함으로 병자들의 상처를 직접 어루만집니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도 그와 같은 온유함으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렇기에 특히 화해의 성사 – 그리고 하느님과의 개인 기도 –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화해의 성사 – 그리고 하느님과의 개인 기도 – 는 하느님의 진리와 온유함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악마도 우리에게 진리를 말해 줄 수 있습니다 – 그는 거짓말쟁이지만, 우리를 거짓으로 이끌기 위해 진실을 말하도록 일을 주선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악마가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를 단죄하고자 함입니다.” 반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씀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손을 내미십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우리를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환대하고 감싸 안아 주며 격려하고 용서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아버지의 마음으로」, 2). 하느님께서는 항상 용서하십니다. 이를 머리와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용서하십니다. 용서를 구하는 데 지치는 쪽은 바로 우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용서하십니다. 심지어 가장 추한 것도 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아버지다움을 반영하는 요셉의 아버지다움을 거울 삼아 우리를 비추어 보고, 주님께서 당신의 온유함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청하여 우리가 저마다 이런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사람들로 변화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이 “온유한 사랑의 혁명”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일어설 수 없고, 구원과 형벌을 혼동하는 정의론의 감옥에 갇힐 위험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온유한 사랑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 저는 우리 형제자매 재소자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싶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옳지만, 동시에 그들이 잘못을 속량해야 한다는 것도 똑같이 옳습니다. 희망의 창 없이는 단죄도 없습니다. 어떤 단죄든 항상 희망의 창이 있어야 합니다. 갇혀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온유함을 생각하며, 그들이 희망의 창에서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요셉 성인께 드리는 기도로 교리 교육을 마칩시다.

온유한 아버지 성 요셉이시여,  

우리 안에 있는 가장 나약한 영역 바로 거기에서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가 우리의 궁핍함과 하느님 사랑의 위대함 사이에

어떠한 장애물도 두지 않도록 하소서.

우리 안에 화해의 성사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 일으키시어, 

우리가 용서받고, 

궁핍함 가운데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온유함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소서. 

잘못을 저지르고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과 가까이 계시어,  

그들이 정의와 온유함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다시 시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아버지의 온유함을 느끼기 위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임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소서. 아멘.

관련링크

  •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2-01/papa-francesco-udienza… 448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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